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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부, 독재정부
시린콧날
2009. 9. 1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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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어떤 완성된 제도나 체제, 그 속에서의 정치적 실천이 아니다. 아무리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이라 하더라도 그자체가 정당성을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그 실천 과정 자체가 민주적이지 않을 때 언제나 책임이 추궁돼야하는, 이른바 항구적인 책임 추궁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p79
책의 서두에 실려있는 대담중에서 최장집의 말이다. 흔히 말하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라 할지라도 그 정부의 정책실천과정이 민주적이지 않을때에는 반드시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그게 바람직하다는 말이 아니라 적어도 민주정부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당위 명제이다. 선출된 정부가 민주적으로 작동하지 않을때,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 선출된 정부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 정당성을 상실할 수 밖에 없다. 책임 추궁의 수단이 없다고 해도, 그래서 민의의 요구에 귀를 닫고 정책을 실현한다면 그 정부는 민주적인 정부가 아니라 권위주의 독재정권과 다를 바가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를 향해 독재정권이라 비판했을때, 청와대 핵심관계자(라고 쓰고 이동관이라고 읽는다)는 비서관 회의에서 이런 말을 전했다. "국민의 뜻에 의해서 530만 표라는 사상 최대의 표차로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마치 독재정권인 것처럼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발언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틀렸다. 사상 최대의 표차로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부라 해도 권력의 실천 과정 자체가 민주적이지 않다면 정당성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민주정부는 선출과정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에게 끊임없이 책임지고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런 매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을때, 그런 매커니즘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폐쇄할때 그 정부는 더이상 정당성을 갖는 민주정부가 될 수 없다.
최장집이 소개하는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의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메커니즘은 '대표, 책임의 연계'이고 본질적인 측면으로 '책임성' 혹은 '응답성'이 강조된다. 이는 선거이후 선출된 정부와 대표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가져야 하고, 통치자는 시민에게 책임지도록 하는 메커니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이것이 없으면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이는 대표와 인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말과 같다.
문제는 현재 한국사회가 선거를 통한 대표선출의 민주성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공고해진 반면, 선출된 대표에게 정당한 책임을 묻는 매커니즘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판과 책임을 가차없이 물어야할 정당, 언론, 시민사회단체, 어느하나 헤게모니를 쥐고 발언하지 못하고, 그런 물적토대조차 허물어져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출된 비민주적 정권을 항해 주인된 당연한 권리로 책임을 물으려 하나 물을 수 있는 수단이 없기에 결국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 소리를 지르고, 인터넷에서 서명을 하고 글을 올리고 있는 것일거다. 다시 말해 시민들의 조직된 힘을 통해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이다. 허나 최장집 교수는 운동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이 아니고, 정당정치를 강화하는 것이 답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한국 현실을 바라볼때, 그 지점에서 참 답답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