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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의 초상, 카르티에 브레송.

시린콧날 2009. 6. 21. 11:51

Marilyn Monroe, 영화 'The Misfits' 촬영장에서, 미국, 1960, HCB1960014W06357/19AC//1



마릴린 먼로의 시선은 그녀를 에워싼 일련의 시선들, 아니 적어도 일련의 겨냥과 쳐다보는 눈들, 유리창에 바싹 다가든 호기심 어린 카메라와 얼굴들 - 두 남자와 한 여자- 속에 걸려들어 있다. 한편 전경(前景)에는 우리들처럼, 카르티에-브레송처럼, 그녀를 향하고 있는 개 한 마리가 보인다. 장식 징을 박은 목끈이 그 개의 존재를 강조하고 있으며, 그녀 뒤에는 부분적으로 가려진 거울 하나가 무한 반사의 조망을 열어 놓고 있다.

마릴린이 대체 무슨 광고 장면을 찍으려고, 무슨 허구적인 작품에 출연하느라고, 아니면 어떤 초상사진을 찍기 위해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사실 이것은 영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 (The Misfits)>의 촬영장면이지만 사진만 가지고는 그렇다는 것을 전혀 알 수 없다] 어쨌든, 머리에 쓴 베일과 소박한 의상은 도발적인 데라곤 전혀 없는 한 인물을 보여준다. 매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매혹이 더욱 가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마릴린 자신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쪽으로, 다른 카메라 혹은 그 어디도 아닌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듯이, 그 매력은 우리들이 아닌 딴 데로 관심을 돌린 그런 매혹이라 하겠다. 마릴린의 시선은 어딘지 좀 피곤하다는 듯, 아니 어쩌면 약간 따분하다는 듯, 그러면서도 입술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의 기미가 서린 채로, 미소가 지워지면서 금방이라도 우수가 밀려들 것만 같이 딴 데로 가고 있다.

또렷하게 오려낸 듯한 얼굴과 네크라인-널찍하지만 절제되고 정확하면서도 신중하고 조심성있는 맨살-이, 여러 시선들의 한가운데에 정지하고 있는 그 이미지, 그 아이콘을 고립시켜 놓고 있다. 그녀의 시선을 아무 관심 없다는 듯 그 여러 가지 시선들을 교묘히 피하면서 구경거리의 표적에서 슬그머니 물러나는, 그 자체가 구경거리가 되어 그 광경의 한가운데에 길 잃은 듯 던져져 있는 형국이다. 

'시선을 주었다' 장-뤽 낭시(Jean-Luc Nancy)'의 글 중에서
내면의 침묵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찍은 시대의 초상' p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