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창고

그 놈의 빈자리

시린콧날 2009. 5. 8. 18:51

2002.02.09

며칠전 동생이 군대를 갔다. 그래서 그런지 늦은 밤이 되면 가끔 빈자리가 느껴지고는 한다. 아마도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아무일 없는 듯이 지내겠지만. 지금은 술먹고 늦게 들어와 싸한 소주냄새를 풍기던 그놈의 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동생이 나와 견줄만큼 커버린 다음부터 난 나와 동생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을 만나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방식, 주변을 꾸려가는 방식이 나와는 너무도 달라, 어느 순간부터는 동생 삶에 대한 내 조언은 쓸모없게 되어버렸다. 보이는 순간순간 아쉬운 부분을 말하려 하면 대뜸 나와 다름을 강조하는 그 놈의 말투에서 난 '충고'를 포기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부터 난 동생으로부터 많은 것을 빚지고 많은 것을 얻고는 했다. '형'이라는 어줍잖은 위치 때문에 그 놈 앞에서 항상 머리쳐든 모양새였지만 돌아서서는 내내 미안하고 부끄러웠던 적이 많았다. 짧은 내 삶속에서, 정확히는 내가 그 놈과의 '연'을 인식하게 된 이후부터 난 빚진 것이 참 많다.

동생이 재수할 때 대학생 형인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뭐하나 도움되는 일도 못했다. 가끔 작정하고 물어보는게 분명한 질문에 시큰둥하게 응하거나 오며가며 '공부 잘돼?'라는 마음 숨긴 인사가 전부였던 것 같다. 그래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고생하는 그 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한게 못내 미안해서 하루는 동생을 찾아갔다. 수능이 임박한 늦가을에 동생이 공부하는 시립도서관이었다. 찌든 열기로 텁텁해진 실내공기를 휘휘 저어 머리숙이고 책에 찌든 그 놈을 건져냈다. 그리고는 도서관 앞 순대국집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참 이상하게도, 뜨거운 순대국을 맛있다며 털어넣는 동생이 왜 그렇게 애잔해 보였는지. 그때의 그 점심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황지우의 '종로, 어느 분식점에서 아우와 점심을 하며' 라는 시가 생각났다.

동생이 대학에 들어간 이후부터는 얼굴 마주 보는 모습보다는 얼굴 발갛게 집에 들어오는 모습을 더 많이 보게된 것 같다. 대학생활, 동아리 생활, 그리고 동생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 항상 울려대던 동생의 전화벨. 나에겐 그것이 동생 몸하나 건사하지 못하면서 남에게만 향해가는것 같아 그걸로 언젠가 후유증이 오래가는 싸움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싸우고 나서 많이 후회했지만 그보다 더 속상했던건. 내가 너무도 협소하고, 바보같고, 어리석었다는 후회 때문이었다. 감정이 격해지고 마음을 할퀴는 말들이 오고가고 나서 동생은 울먹이기 시작했다. 항상 형은 옆에 있었기 때문에 어렵고 힘들었노라고 말했다. 한번도 자기 입장에서 이해해주지 않았다고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고. 그렇게 토해내듯 뿜어내는 동생의 언어 앞에서 난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그 일을 전후로 아마 난 동생에게서 '어린'이란 말을 지워버렸던것 같다.

춘천훈련소 가는 입석 기차 승강장에서 동생은 오른편 난 왼편의 차창에 섰다. 각기 맞은편 풍경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서로 한참을 아무말도 못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난 그것이 할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말들 때문에 그러했다는 것을 안다. 기차에서 내려서 부대로 갈때까지 기회있으면 난 히죽대며 웃었다. 어울리지 않은 농짓거리에 동생도 쓴웃음으로 응답했다.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이 나와 동생에게는 너무도 어색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입대식이 끝나고 동생과 나는 손을 맞잡았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형이라고 내 손을 간절히 움켜잡는 그 따스함이 난 못내 고마웠다. 동생은 얼굴 돌려 점점 멀어져가고 난 안타깝게 오른손을 높이 들고 뒷걸음질 쳤다. 동생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날 찾아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치는 사이에 멀리서 흰잠바를 입은 동생의 오른손이 용케 나를 보며 올라갔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뭐가 그리 급했는지 난 자꾸만 좌우로 손을 크게 흔들었지만 동생은 자꾸 이제 그만 가라고 손바닥을 앞뒤로 작게 흔들었다. 어두운 표정으로도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 난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돌아서서서 계단을 내려서는데 그 잔상때문에 울컥했다. 그 모습. 거친 손을 앞뒤로 흔들며 가라고 손짓하던 그 모습이 내내 가슴에 박혀 참 많이도 아프게 했다. 

돌아오는 경춘선 열차 안에서 벨 앤 세바스찬의 시디를 들었다. 들으며 딱히 머물곳 없는 멍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서있는 승강장 맞은편에 동생이 없다는 것으로 난 그놈의 '부재'를 느끼고 있었다. 감정이 그러하듯이 시간이 지나면 빈자리도 채워질거다. 하지만 늦은 밤에 그 놈 누워자던 방 한구석을 보면 앞뒤로 손 흔들던 모습이 생각나 그냥 마음이 짠하다. 

요즘 내 주변에 빈공간이 많이 보인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면 이제는 그만 채워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