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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합리적인, 너무도 비합리적인 우리들
시린콧날
2009. 4. 2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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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낚이며 산다. 특히나 요즘처럼 정보가 범람하는 상황에서 제정신차리고 올바른 선택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내 선택에 확신이 없는 상황. 물건을 살때 매번 수십번의 클릭질을 통해 세심하게 판단한다고 하면서도 그 끝은 후회로 가득한 상황들. 주식시장을 좌우하는 심리적인 요인들. 전통적인 경제학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금융위기. 자,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인간은 과연 합리적인가. 경제활동은 전통경제학이 가정하듯이 합리적인가. 이성은 믿을만한가. 이 책은 명쾌하게 답을 내린다. "그렇지 않다"라고.
특정한 상황에서 언제든 비합리적이 되기 쉬운게 인간이고, 이런 비합리성은 충분히 예측가능하기 때문에 (따라서 비합리성에 대한 모델링이 가능하다.) 이를 제거하거나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비합리성을 인지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자 정도 될까. 쉽게 말하자면 "내가 몇가지 실험을 통해 알려줄테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낚이지 마세요"라고 할 수 있겠다. 사회제도, 경제제도에 대한 심오한 얘기나, '알면서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인간관계, 심리에 대한 분석은 소원하다. 잊지말자. 이 책도 경제학책이니까.
이 책의 미덕은 비합리적인 사례들을 무수히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통찰력 있게 설계된 실험상황은 매력적이다. 사회과학에서 '실험'이 가진 설명력에 의문을 가진다고 해도, 이해할 만한 범위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쉽고 재미있다. 실험에 '나'를 대입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재미있는 실험중에서 두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첫번째 인상적인 실험은 주간지 구독 선택의 문제였다. 다음과 같은 선택이 있다고 하자.
1. 한겨레21을 온라인으로만 구독할때는 5만원
2. 한겨레21을 오프라인으로 받아볼때는 10만원
3. 한겨레21을 온라인 + 오프라인으로 볼때는 10만원
이 경우 대부분 사람들 (실험에서는 80%사람)은 3번의 선택을 하게된다. 그런데 다음의 선택을 보자.
1. 한겨레21을 온라인으로만 구독할때는 5만원
2. 한겨레21을 온라인+오프라인으로 받아볼때는 10만원
이 경우에는 3가지 선택이 있을때보다 2번을 선택하는 비율이 현저하게 낮아지게 된다. 두번째 선택에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장단점. 가격의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주간지를 구독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그 두가지 선택중 하나를 선택하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 경우 면밀한 가치판단이 전제되어야 하고 필요와 상황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한겨레 21을 오프라인으로 10만원에 구독하는 옵션을 끼워넣었을 경우이다. 이때 판단은 단순해진다. 장단점이 명확한 두개의 대상이 있기 때문에 (동일 가격에 제공조건이 상이한 경우) 비교하기 어려운 1번의 선택은 '비합리적으로' 배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결국은 서로 비교하기 쉬운 것만 비교하려는 경향 탓에 3번을 선택하기 쉽다. 2번보다는 3번이 유리하고, 판단이 어려운 1번은 포기하기 쉽다.
문제는 3번이 가장 합리인 선택이라 믿는다는 점이다. (비교가 어려워 그냥 배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저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비합리적인 선택'이다. 의도적으로 비교하기 쉬운 대상을 끼워넣었을때 우리는 '낚이기' 쉽다. 공급자가 10만원짜리로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2번을 의도적으로 끼워넣는 경우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이 많지 않을까. 저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낸다.
우리에게는 이것과 저것을 비교하고자하는 성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비교하기 쉬운 것만 비교하려드는 경향이 있다. p35
두번째는 사회규범과 시장규칙과의 관계였다.
한 탁아소에서 부모가 아이를 늦게 찾으러오는 일이 잦았다. 늦게 찾으러 오면서 대부분은 매우 죄송해했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궁리끝에 탁아소에서는 늦게 찾으러오는 부모에게 벌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는데, 재밌는 점은 벌금을 부과하자 부모들이 늦게 오는 빈도가 오히려 증가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전에는 죄송해하거나 미안해하던 부모들이 벌금을 부과하기 시작하자 오히려 떳떳해졌다. 재미있는 것은 그 이후이다. 결국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별다른 효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된 탁아소에서는 벌금제도를 폐기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늦게오는 빈도도 줄지 않았고, 돈을 받지 않았음에도 이전처럼 미안해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더라는 점이다.
왜 그럴까. 저자는 사회규범과 시장규칙으로 설명한다. 예를들어 변호사가 변론을 해주는 것은 시장규칙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그 댓가로 '돈'을 제공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변호사에게 무거운 물건을 들어달라고 '부탁'했을때는 시장규칙이 아닌 사회규범의 적용을 받게 된다. 이 경우 물건을 들어준 댓가로 돈을 제공하는 것은 (다시 말해 시장규칙을 적용하면) 부적절할 뿐더러 불쾌해 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해 시장규칙은 '돈'이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돈을 매개로한 등가 교환관계가 성립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돈을 지불하는것이 당연하다. 규범이 개입할 여지도 없다. 반면 사회규범의 영역은 인간적인 측면이나, 정(情), 혹은 규범논리가 적용된다. 문제는 이 두 영역이 충돌할때 발생한다. 정책을 입안할때 시장규칙을 적용할 것인가, 사회규범을 적용할 것인가하는 선택의 문제는 특히 중요하다. 가령 내 집 앞 눈 치우기를 하기 위해서 안 치웠을 경우에 벌금을 부과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규범적인 측면을 강조 혹은 교육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까. 정답은 없겠지만, 주의할 점은 한번 시장논리가 개입되면 다시 사회규범으로 회복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사회규범과 시장규칙이 충돌하면 사회규범이 밀린다. 다시 말해 사회적 관계는 다시 세우기 어렵다. 다 피어버린 장미처럼 사회규범이 한번 시장규칙에 밀리게 되면 회복은 거의 불가능하다. p122
이 책은 행동경제학의 측면에서 전통경제학에 대한 비판 사례로는 읽을만 하다. 경제학에서 공리로 간주하는 것들이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며 인간은 비합리적으로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은 불규칙한것이 아니라 예측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비합리성을 경제학 모델로 도입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예측가능한 비합리성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이다. 이 부분에서 '자기계발서'의 모습을 띄는데 이게 좀 당혹스럽다.
이 책은 경제활동이 과연 합리적인가, 비합리적인가에 대한 하나의 판단근거로서 한정하는 것이 좋을듯 하다. 예를 들어 넷북을 사야 하는데, 수많은 광고와 광고를 가장한 리뷰를 보고 최종 선택을 내릴때 '과연 나의 소비는 정확한 가치판단을 근거로 한 것인가'를 질문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실험이 보편적인 행위에 대한 엄밀한 답은 아닐지 모르지만, 판단의 참고로 보는 것은 의미있다는 생각이다. 비합리적인 기대를 이용하여 '낚시질'하려는 행위자에게 대항하는 방법으로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책을 꺼내들었을때는 좀더 깊이있는 분석을 원했었는데 재미있었던 만큼 조금은 가벼워서 실망스러웠다. 물론 이 책의 매력은 실험에 있긴 하지만 "인간은 비합리적이니 우리는 어떠해야 한다"라는 대목은 아니다 싶었다. 실험의 상황은 기발하고, 도출된 결론도 수긍이 가고, 내가 피실험자의 입장이라면 그럴 수 밖에 없었을거다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정작 '왜 그렇게 행동할까'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이 없다는게 치명적이다. 답은 그저 실험을 통해 설명하는 식이다.
행동의 원인, 비합리적인 인간에 대한 설명을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으로 치환하다보니 집단의 영향이나, 사회, 군중의 영향에 대한 고찰도 별로 없다. 저자가 행동주의 경제학자이다보니 사회,인문학적인 차원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부족한건 아닌가 싶다. 실험주의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게다가 통제된 실험결과가 과연 인간이 그러하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도 버릴 수 없다. 그것의 보편성, 모델로서의 목적성을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 사회과학의 한계로 들 수 있는 '가치중립'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예측할 수 있을 만큼 비합리적이다라는 말은 전달되는데 왜 그 상황에서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사고하게 되는가에 대한 저자 나름의 분석이 없어 깊이있게 공감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매 챕터 끝에서 자기계발서의 뉘앙스로 마무리 지을 수 밖에 없었던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