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창고
지난 일요일에 (20090414)
시린콧날
2009. 4. 14. 13:30
그냥 가볍게 산책을 하려했다. 한낮의 햇살만 아니었다면.
아파트 한켠 자전거보관소로 간다.
방치된 것이 분명한 먼지쌓인 자전거들이 을씨년스럽다. 어울리지 않는다.
내 자전거를 찾아 꺼낸다. 카메라를 뒷좌석에 끈으로 동여멘다. 떨어지지마.
이어폰을 귀에 꼽는다.
어떤 노래를 들을까. 고민을 한다. 그냥 셔플.
집근처 벚꽃. 여의도 만큼은 아니겠지만 꽤 괜찮게 핀 천변도로를 지난다.
복잡하지 않고, 외롭지도 않을 만큼의 사람들.
지나치며 한번씩은 얼굴을 쳐다볼 수 있었다. 다들 행복해했다.
햇살이 너무 뜨거워 그늘을 찾아 앉는다.
모자를 깜박 잊었다. 햇살이 이럴줄은 몰랐다. 4월의 햇살치고는 지나치다.
팔을 걷어부치고 병에 담아온 결명자 한모금을 마신다. 벌써 데워졌다.
숨좀 돌리고 시선을 멀리 던져 셔터를 누른다.
광각이면 좋으련만. 50m 프레임에 보이는 분절이 맘에 들지 않는다.
다 담고 싶지만, 담을 수 없는 상황은 여전히 익숙하다.
그래도 한낮의 뜨거운 해만큼은 이 필름에 고스란히 담고 싶다.
몇장을 찍고 다시 페달을 밟는다.
첫 페달에서 느껴지는 무거움마저 달갑다.
바람이 불어온다.
이렇게 바람을 느낄 수 있어서 좋을줄 알았다면 오전에 나올 걸.
귀에서 흘러나오는 리듬에 맞춰 페달을 돌린다.
김훈이 '자전거 여행'에서 그랬던가. 페달을 밟으며 땅의 진동이 다리에 닿는 것 같다.
자전거는 어떤 원초적인 행위가 맞는 것 같다.
브로콜리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가 나온다.
음악소리에 묻혀 이런저런 포근한 소리들이 함께 들려온다.
곡과 곡 사이, 짧은 순간에 새소리가 들린다.
녹음을 하고 싶었다. 갑자기.
잠안오는 밤에 꺼내어 들으면 좋을텐데.
버릴 수 있는 것은 없는데 버려야 할 것이 많은 요즘이다.
난 아직 버릴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머물지말고 가버려라 남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