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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삼십대 사이, 심보선의 시집

시린콧날 2009. 3. 16. 14:05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 시집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심보선 (문학과지성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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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간만에 시집을 샀다. '청춘'이라는 시를 읽고, 서점에서 몇개의 시를 더 읽어본 뒤 주저없이 꺼내들었다. 94년 등단후 오랜시간 모아온 탓인지 꽤 두툼한 심보선 시인의 시집. 어쩌면 두번째 시집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기형도 처럼. 시들이 어떤 시간 순서로 배열되어 있는걸까. 궁금해졌다. 

시집을 여는 첫 시부터 압도적이다. "내 언어에는 세계가 빠져있다" (슬픔의 진화) 시인은 말한다. 세계가 없으면 존재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있는 것일까.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던 하이데거의 말이 떠오른다. 세계도 없고, 존재도 없다는 그의 언어는 비겁해보이지만, 그 솔직함이 마음에 든다. 도대체 시가 세계 혹은 존재를 온전히 담을수 있는가. 그런 척을 한다해도 어디까지나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먹다 만 흰죽이 밥이 되고 밥은 도로 쌀이 되어
하루하루가 풍년인데
일 년 내내 허기 가시지 않는
이상한 나라에 이상한 기근 같은 것이다
우리의 오랜 기담(奇談)은 이제 여기서 끝이 난다

착한 그대여
착한 그대여
아직도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열을 셀 때까지 기어이 환한가
천 만 억을 세어도 나의 폐허는 빛나지 않는데
그 질퍽한 어둠의 죽을 게워낼 줄 모르는데

- 식후에 이별하다

시집을 들고 다닌건 좀 되었는데, 좀처럼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시의 마지막 줄을 읽고나면 시선은 다음 장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첫 줄로 되돌아간다. 내가 하고 싶은 말들 탓일까. 책갈피를 해두고 다시 열어도 언제나 첫장부터 다시 보게된다. 퇴근길이었나. 침침한 눈으로 '식후에 이별하다'를 읽다가, 또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이 시만 계속 읽었다. 이별, 헤어짐. 좁힐 수 없는 간격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을 바라본다. 언제나 그대가 서있는 곳은 열만 세어도 환하지만, 나는 천 만 억을 세어도 빛나지 않는 어둠이거나 폐허이다. 아마도 이 시인의 이별 또한 지독했으리라. 나의 이별은 어떠했던가. 할말이 많이 남는다. 결국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시집 한 구석에 하고싶은 말을 놓아둔다.

심보선을 알게해 준 '청춘'이라는 시는 3부의 처음, 바로 다음에는 '삼십대'라는 시가 놓여있다. 시집의 시간순서가 궁금했던건 그 때문이다. 두툼한 시집에 촘촘히 배열된 시 사이에서 청춘과 삼십대는 기묘하게도 나란히 놓여있다. 삶에서 청춘과 삼십대의 간격이 그러하듯이. 한장을 넘기면 마주치게되는 청춘과 삼십대. 하지만 그 간격은 너무도 크다. 좁힐 수 없는 간격, 낯설음이 느껴진다. 시인의 말처럼 청춘은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고, 삼십대는 "청춘을 껌처럼 씹고 버"린 후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라고 반문하게 되는 시절이 아니었던가. 먹던 껌을 다시 씹는 것처럼 씁쓸하다.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을 때 자랑처럼 산발을 하고 그녀를 앞질러 뛰어갔을 때 분노에 북받쳐 아버지 멱살을 잡았다가 공포에 떨며 바로 놓았을 때 강 건너 모르는 사람들 뚫어지게 노려보며 숱한 결심들을 남발했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을 즐겨 제발 욕해달라고 친구에게 빌었을 때 가장 자신 있는 정신의 일부를 떼어내어 완벽한 몸을 빚으려 했을 때 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서 그 그림자들 거느리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번뿐이라는 청춘이라는

- 청춘

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 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에 고여 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닮은 새였다 (제발 날아가지 마), 삼십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에 몸 들뜨나, 산책에서 돌아오면 이 텅 빈 방, 누군가 잠시 들러 침만 뱉고 떠나도, 한 계절 따뜻하리, 음악을 고르고, 차를 끓이고, 책장을 넘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이것을 아늑한 휴일이라 부른다면, 뭐, 그렇다 치자, 창밖, 가을비 내린다, 삼십대, 나 흐르는 빗물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간다

- 삼십대

아직 이 시집을 채 절반도 읽지 못했다. 언제쯤 다 읽을지도 사실 모르겠다. "사는 둥, 마는 둥" 살아가며 찔러도 아프지 않을 몸 어딘가에 오래 지니고 다닐 것만 같아 불안하다. 다 읽어도 읽은 것 같지 않은 느낌. 존재도 세계도 담지 않은 이 시들 앞에서 난 자꾸만 길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