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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다.

시린콧날 2009. 1. 21. 10:41

나쁜 사마리아인들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장하준 (부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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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을 읽고 거시경제 혹은 국제무역과 관련한 책이 더 읽고 싶어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을 골랐다. 국방부 금서사태때 이슈가 되었던 책이라 관심은 갔는데, 작금의 경제상황에서 읽자니 더 흥미롭다. 거시적인 관점, 특히나 국제경제적인 관점에서 봤을때 뉴스의 이면을 추론해보는데 좋은 책이란 생각이다. 본래 영어로 쓰인 책을 다시 한국말로 번역했는데 그게 좀 아쉽긴 하다. 하지만 저자가 한국사람이다보니 한국경제에 관한 실증적인 언급이 많아(특히나 한국 기업에 대한) 이해가 쉽다. 아쉬운 점은 논지를 강조하기 위해 중언부언이 많고 반대의견을 너무 간략하게 언급하고, 너무도 성의없이 논박해서 당황스러울때가 있지만 풍부한 자료들은 꽤나 공을 들인 발품이 느껴진다.

읽으면서 불편했던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저자는 6,70년대 (나아가 80년대까지 포함해서) 한국의 경제발전 방향에 대해 기본적으로 긍정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게 보호무역 對 자유무역의 구도에서 볼때 개도국의 경제발전론의 성공사례로 한국을 들고 있기 때문일거다. 즉, 경제발전론에서 국가주도형 경제발전의 상대적 우위를 증명할 논거로 한국을 자주 들고 있다는 말이다. 싱가포르, 인도, 일본, 중국도 다루고 있으나 논거의 풍성함에서는 차이가 크다. 한국의 특수한 사정을 모르는 외국인이 이 책을 봤을때는 한국의 발전모델이 부작용 내지는 역작용 없이 이뤄진 것으로 오독할 우려도 있어 보인다. 저자의 논지를 밀고 나가기 위해 사용한 방법론 탓일지도 모르고, 곁가지라 생각해 제외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국에서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의 시선치고는 조금 당혹스럽다.

다시 말하자면, 그 당시 한국의 경제상황에서 개방형 자유무역주의가 올바른 것이었는가, 아니면 유치산업론을 기반으로한 국가주도형 보호무역주의가 올바른 것이었느냐에 대한 답이라면 장하준의 논지에 적극 찬성한다. 단기적인 수익이 아니라 장기적인 산업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부의 의도적 시장조정과 배분정책이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박정희식 모델이 올바른 것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찬성할 수 없다. '악랄한' 국가주도의 보호무역주의, 성장을 위한 분배의 철저한 파괴를 기반으로했던 한국의 경제성장모델은 그 결과가 바람직했다해도 그 과정까지 올바르진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장하준이 말하는 국가주도형 발전모델이 역사적으로 봤을때 '당연히' 일인독재, 엘리트주의, 개인 인권파괴 등의 기반위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는 특히나 더욱 심하지 않았나.

물론 논지의 선명함을 위해 알면서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그의 시선이 보호무역을 기반으로한 발전모델의 '결과'에만 향해있다면, 그래서 그의 눈에 이면의 부작용과 역작용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 점에서는 동의해줄수 없으며 그 논지도 일방적이기에 옳다고 말할 수 없다. '발전'이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한 가치차이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간만에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책이다. 그런데 읽다보며 내내 든 생각이긴 한데 도무지 국방부는 왜 이 책을 불온서적으로 정했는지 감이 안온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는데도 감이 안오긴 마찬가지다. 목록작성자가 바보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지만, 역시나 어렵다. 국방부 장관께서 (생각지도 않게) 자유무역의 신봉자였거나 아니면 그 분의 아드님이 WTO에 몸담고 계신건 아닐까 싶은 어이없는 추측까지 하게 만든다. 뭐, 아마도 이 책에서 찬성하고 있는 개도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일종의 국가계획경제를 공산주의로 쉬이 치환하지 않았을까 싶고, 또 그들의 '색안경'으로는 이게 반미로 읽혔을거라 생각해본다. 아니면 민영화와 신자유주의를 '전파'할 새정부와의 코드맞추기였을수도 있고. 그들의 얕은 지적수준으로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신봉해마지 않는 박정희 및 전두환 시절의 우리 경제는 보호무역주의 및 국가계획경제였다는 건 아는지 모르겠다.

책에서 인상적인 구절이 있어 옮겨본다. 존 갈브레이스가 한 말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데, 공산주의에서는 그 반대이다." 짙은 냉소가 느껴진다. 저자가 말하듯이 그놈이나 저놈이나 똑같다는 양비론은 아닐거다. 평등 사회를 지향해왔던 현실 공산주의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일거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과연 대안은 무엇일까. 뭐가 발전일까. 어떻게 생래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을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게 이타적으로 만들면서 발전을 이룰수 있는 모델은 있을까. 그런 질문들. 뜬금없는 전면공격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중동의 꼴이나, 작금의 탐욕스런 이명박 정부의 꼴이나, 서울 한복판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죽어나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보면 정말 대안이 뭘까 싶다. 인류라는 족속이 그들 스스로 평등하고 행복한 공간을 만들 능력이나 의지가 있을까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고 할까. (이건 나에게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존 갈브레이스의 촌철살인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여튼 그렇다. 이런 생각하다보면 세상사가 전부 보잘것없고, 답답해진다. 내 상황도 그렇게 느껴지고 말이지. 그래서 적당히 생각을 닫아걸어야 한다. 이렇게 뭔가 외부로 열려야있어야 할 예민한 촉수가 한없이 달아 없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