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창고

겨울의 기억, Fox in the snow

시린콧날 2009. 1. 20. 09:33





카프카의 심판의 소설표지가 더 인상적이었던 빨간앨범 표지


블로그에 글을 적은지 꽤 오래된 것 같다. 고작 열흘남짓 되었을 뿐인데. 전엔 더 뜸했던 적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래도 꾸준히 적은 탓인지 간만의 '휴지기'가 새삼스럽다. 가끔 뭐라도 적고 싶어 글쓰기 버튼을 누르면 '쫘~악'하고 펼쳐지는 너른 백지가 조금은 두렵더라. 다른 블로그를 읽는건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왠일인지 내 블로그에 오는 발길은 전에 비해 뜸했었다. 그간 날도 추웠고, 이 공간도 많이 쓸쓸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 곁에 짠뜩 쌓여있던 노래들을 차곡차곡 모아 들었다. 작년 발표된 음반도 있지만, 대부분은 예전에 발표된 것들이다. 숙제하듯 듣는 것이 아니라 듣고싶어 들었다. 좋은 음악 블로그가 많은 탓에 그들이 쏟아내는 음반 소식들만으로도 조금의 '피로감'이 느껴졌던 것 같다. 밀린 숙제를 하듯 쉬이 듣고 쉬이 평가하고 쉬이 접어두었다고 할까. 음악은 여러번 듣고 새겨야 그 맛이 우러나오곤 하는데 요즈음 소비하듯 음악을 듣지 않았나 싶다.

시디 꽂아놓은 책장 앞에서 플라스틱 케이스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고르거나, 아니면 아이팟에 담긴 곡들을 손으로 튕기며 골라들었던 요 며칠의 음악감상. 그 탓인지 귓가에 켜켜이 쌓여있는 음의 퇴적이 기분 좋다. 새로운 곡을 알아가는 기쁨도 크지만 역시 잔잔하게 가라앉은 음악을 기억하고, 그 노래들과 다시 만나는 것이 더더욱 행복하다.

새삼 벨 앤 세바스찬을 다시 듣는다. 나에겐 눈덮인 겨울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그들의 빨간앨범. 특히 Fox in the snow. 일종의 의식이랄까. 며칠전 눈이 퍼붓던 날에도 이 빨간앨범을 들었다. 그때는 너른 운동장이었지만 지금은 공원처럼 바뀐 그 시절 대학교 운동장이 떠오른다. 이 빨간앨범을 종로 음반점에서 사던 날도 눈이 많이 왔었다. 이 앨범을 휴대용 시디플레이어에 넣고, 한참 학교 운동장을 걸었었다. Fox in the snow가 흘러나올때 이유없이 서럽고, 울컥하던 기억. 그래서인지 이 빨간앨범은 나에겐 영원히 겨울이고, 폭설이다.

노래를 들으며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찾아드는 이런 기억이 참 고맙다. 쉴새없이 나에게 달려드는 좋은 음악들. 그 음악에 내 기억을 조금씩 담아두는 건 아주 오래된 버릇일거다. 기억이 없는 음악들은 내 안에 차분히 퇴적되지 못한다. 당분간은 노래 한켠에 기억을 담으며 들어야겠다. 호흡이 길어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