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창고

중산층...그리고 허위의식

시린콧날 2006. 6. 2. 13:49

대학 4년간 쌓아놓은 책중에 계급이론관련 서적의 어디쯤을 뒤적거리면 자본주의내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실패'한 까닭중의 하나는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정의하는 이들이 많아진 까닭이라고 설명하는 책이 있을거다. (있을것 같다...) 다시 말해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의식'이 엺어지고 사회의 혁명적 변혁을 꿈꿀만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의 등장. 스스로를 노동자,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그 보다 조금 위쯤 어딘가의 '중산층'이라고 규정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것. 이들은 결국  계급갈등을 '완충'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설명.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니고 '중간'이라는 규정하기 힘든 모호함 때문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한국사회의 70~80%가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규정한다는 서베이도 본적이 있다. 도대채 누가 중산층일까? 단지 경제적인 풍요로움, 부족하지 않은 소비를 기준으로 중산층을 나눌 수 있을까? 아님 퇴직할때가 되어 당장 먹고살 걱정없이 살 수 있는 소유를 기준으로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민식, 1961년 부산

의문은 중산층이 위와 아래의 중간지점이라는 상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데서 나온다. 사회의 계급모순은 그대로 이지만 물질적인 풍요로 인해 전반적인 생활수준이 '조금더' 나아졌다면, 그래서 사회 하위계층의 삶이 10년전 그런대로 먹고살만한 사람들의 수준과 동등해졌다고 해서 그들을 현시점에서 중산층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차이'는 고스란히 존재하는데 말이다.

차 한대 끌고, 아파트 한채 있고, 당장 짤리지 않는 직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으로 불린다는 것은 넌센스다. 차는 몇 CC인지, 외제인지 국산인지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고, 아파트의 위치가 어디인지, 그 평수는 얼마인지, 브랜드 네이밍이 있는 아파트 인지의 차이는 '천양지차'이며 연봉은 얼마인지 대기업인지 중소기업인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의 차이는 조선시대 양반과 평민의 차이보다 크다는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일종의 중산층 마취의식이, 오늘 당장 물건이 널려있는 이마트에서 카트 가득 먹을것을 사고 차 트렁크에 가득채워 돌아올 수 있다는 순간적 최면이 그런 엄연한 차이를 가리고 있다. "그래도 이정도면 살만한거지 뭐..." 국민소득 2만달러를 향해 불철주야 뛰고 달리나는 언론의 '협박'에 "그래 잘살자는 건데 뭐..."라고 호응하는 우리들.

레드몽키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느꼈을 '간극'이 이해가 간다. 아마도 그 자리의 교수와 제자라는 계급적 차이 만큼이나 중산층과 그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최민식, 1976년 부산. 자갈치 시장


맑스주의자들은 '중산층 허위의식'이라고 표현 하던가? 요즘처럼 그런 의식이 팽배한 적이 없었던것 같다. 이 정도면 살만한 사회라고 자위하면서... 그러면서 우리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엺어지고, 사회는 점점 우로만 향해 가고 있다.  서로서로 중산층이라고 위로 하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결과는 참 암담하기 이를데 없다...

이 순간 직장에서 일하는 나도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면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상류층'의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참 씁쓸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