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창고

삶은 과거진행형 (20090320)

시린콧날 2008. 11. 28. 14:31

하늘이 깨끗하다. 
얼굴에 닿는 햇빛의 잔잔한 진동만으로 봄날을 느낄 수 있다.
계절은 시선보다 먼저 육감으로 전해진다.

한 친구는 미국에서 열리는 지인의 전시회에 참석한다며 일주일간 휴가를 냈다. 
그 친구의 빈자리가 부러운 건 드디어 찾아온 봄날 탓일지도 모르겠다.
짧게 떠나기 좋은 날이다.
떠난 사람, 떠날 사람들의 얼굴을 보게된다.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내 마음이 안쓰러워서 한숨 흘렸다.

여행 이야기를 읽는다.
남해바다를 휘휘돌아온 바닷바람에 코끝이 달큰한 여행이야기.
그 안에 있는 '여. 수. 바. 다'를 두세번 소리 내어 읽으면서
아, 그렇게도 아스라한 느낌이 몰려올지 몰랐다.
한때 지친발로 여수를 지긋이 밟고 있었던 내 기억들 때문이리라.
한줄 한줄 적힌 글 사이에 불쑥 끼어들어 몇마디 거들고 싶을 정도로
기억은 펄떡거리듯 아직 생생하다.

몇년이나 되었을까.
맨몸으로 바람을 안고 있어도 하나도 춥지 않았다. 그때 그 바다는.
남해바다의 상큼한 바람.
락카칠한 '여수버스' 글자를 자랑스레 꽁무니에 달고 있던 버스.
조금 열어둔 창문 사이로 깊이를 알 수 없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던가.
바람에 소금기가 묻어있어 코끝으로 숨을 들이쉬면 단 한숨으로도 충분했다.

푸르다는 말조차 부족했던 쪽빛 바다를 앞에두고 가슴이 벅차던 기억.
감격스런 바다를 홀로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아프고 안타까워 얼마나 자주 심각했었던가.
혼자의 여행이라는 것이 돌아서면 외롭고 아프고 막막한 것이지만,
특히나 여수 바다 앞에서는 뭐든 부서질 듯 위태했었다.
내륙을 지나 마주선 땅끝, 그리고 다시 마주선 바다.
아, 보고싶다.
왜 그리 기억이 몰려오는지 모르겠다.

향일암에 올라본 사람은 안다.
끝도 없이 너른 바다를 굽어보면서 스스로 한없이 작아져야만 하는 왜소함.
왜 이곳까지 밀려온 건지 스스로를 질책하게 만드는 거대함.
그 바다 끝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나면 돌아설 힘이 돋아나지 않았던가.
나아갈 수 없기에 결국 돌아서야 하는 것이지만,
향일암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물 한모금으로 다시 당당해질 수 있었다.
몇년이 되었나. 봄 햇살탓인지 생생하다.

바람 냄새로 몇 달을 버틸 수 있다는 그 말이 그래도 솔직하다.
남해의 어느 한 귀퉁이에 자리한 여수바다를 보고서 오래 후회했으니.
며칠간 이어진 내 발길을 질책하고 있었으므로.

떠나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아야겠다.
정작 떠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보내는 치졸한 위안 같은 것.
떠날 수 있다면 '떠나고 싶기 전에' 나 발길을 돌리고 있을 터
난 지금 떠나고 싶은게 아니다.
그때 내가 떠날 수 있었던 그 순간을 
열심히 추억하고 있을 뿐이지. 
사는 둥, 마는 둥 살아가고 있을 뿐이지.

결국 모든건,
추억에서만 아름답고
추억에서만 그리웁고
추억에서만 보고싶을 뿐이다.

삶은 과거진행형이다.


어두워지자 길이
그만 내려서라 한다
길 끝에서 등불을 찾는 마음의 끝
길을 닮아 물 앞에서
문 뒤에서 멈칫거린다
나의 사방은 얼마나 어둡길래
등불 이리 환한가
내 그림자 이토록 낯선가
등불이 어둠의 그늘로 보이고
내가 어둠의 유일한 빈틈일 때
내 몸의 끝에서 떨어지는
파란 독 한 사발
몸 속으로 들어온 길이
불의 심지를 한칸 올리며 말한다
함부로 길을 나서
길 너머를 그리워한 죄

이문재 - 노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