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창고
나 서른이 되면 (20081201)
시린콧날
2008. 12. 1. 21:48
12월이다. 이제 한장의 달력을 넘기면 또 내 몫의 한 살을 채워넣어야 한다. 하루 사는 것처럼, 한해 사는 것 아닌가. 다르지 않고, 다를 수도 없는, 그저 살아내는 것이 삶이다. 그리고 그 삶이 켜켜이 쌓여가는 탁한 먼지 냄새가 나이 아니겠는가. 나에겐 그랬다. 아니다. 그래도 나 서른 무렵엔 그저 오는 시간을 마주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같은 진폭은 아니겠으나, 여기저기 서른을 앞에둔 사람들의 설움이. 두려움이. 걱정이. 다짐이 보인다. 그들에게 나 서른 무렵에 읽었던 나희덕의 시를 들려주고 싶다.
나 서른 즈음에. 스물아홉에 생을 마감한 기형도의 시를 읽으며 내 앞에 놓여있던 서른이 그리도 두려웠었다. 보이지 않는, 눈물젖은 희망을 노래해야 할지 모르는 서른. 12월을 앞에 두고 다시 시를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지상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던 첫눈. 그렇게 쓸쓸히 날리던 첫눈을 말했던 기형도. 그의 서른은 그렇게 세상에 내려앉지 못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내 서른은 어떠한가.
얼마전 내 나이가 광석이 형이 삶을 마감한 그 언저리를 통과하고 있다는 것에 꽤나 충격을 받았다. 그는 서른 남짓한 삶을 살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일까. 그가 남긴 노래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광석이 형보다 더 긴 세월을 살아갈 난 희망을 말하며 바로 설 수 있을까. 형의 노래가 점점 더 무거워진다. 가는 이십대, 담배연기처럼 멀어져가는 젊음을 토로했던 형의 노래가 마냥 어렵고, 마냥 힘들다.
나 서른이 되면 / 나희덕
어둠과 취기에 감았던 눈을
밝아오는 빛 속에 떠야 한다는 것이,
그 눈으로
삶의 새로운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이,
그 입술로
눈물 젖은 희망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렵다.어제 너를 내리쳤던 그 손으로
오늘 네 뺨을 어루만지려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
결국 치욕과 사랑은 하나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가을비에 낙엽은 길을 재촉해 떠나가지만
그 둔덕, 낙엽 사이로
쑥풀이 한갓 희망처럼 물오르고 있는 걸
하나의 가슴으로
맞고 보내는 아침이 이렇게 눈물겨웁다.잘 길들여진 발과
어디로 떠나갈지 모르는 발을 함께 달고서
그렇게라도 걷고 걸어서
나 서른이 되면
그것들의 하나됨을 이해하게 될까.
두려움에 대하여 통증에 대하여
그러나 사랑에 대하여
무어라 한마디 말할 수 있게 될까.생존을 위해 주검을 끌고가는 개미들처럼
그 주검으로도
어린것들의 살이 오른다는 걸
나 감사하게 될까 서른이 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