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창고

광장의 서문을 다시 읽으며

시린콧날 2008. 11. 25. 19:55

출근하자마나 포스팅하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읽었을때의 감정이 휘발될까 싶어 바로 적어두고 싶었는데...조금 아쉽다. 마그리님의 글에서 최인훈의 광장 서문을 발견하고 주의깊게 읽어봤다. 그 서문의 쓰여진게 1960년이니 새시대에 대한 감격, 공화국에 대한 기대가 물씬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자신이 '광장'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는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이 들어섰기 때문임을 당당히 고백하고 있다. 건조할 거라 생각했던 광장의 서문이 이런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메시아'가 왔다는 이천 년래의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죽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부활했다는 풍문도 있습니다.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하리라는 풍문도 있습니다. 우리는 참 많은  풍문속에 삽니다. 풍문의 지층은 두텁고 무겁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문화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풍문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이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 광장에 대한 풍문도 구구합니다. 제가 여기 전하는 것은 풍문에 만족지 못하고 현장에 있으려고 한 우리 친구의 얘깁니다. 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서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

 -'새벽', 1960년 10월 -

내년이면 최인훈의 등단 50년이라고 한다. 그의 소설 '광장'이 태어난지 벌써 50년이 다 되어가는 셈이다. 발표한 뒤 6번이 넘게 개작했고, 작가가 아직도 다시 써야할 소설이라는 '광장'. 4.19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그 서문을 읽고 있자니 마음이 갑갑하다. 빛나는 4월. 그가 보람을 느꼈다던 그 시절. 막 발표한 소설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5.16이 벌어졌고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서문에서 얘기한 민중이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그 구정권을, 어쩌면 더 악랄한 정권이 대신해 들어섰다. 광장을 꿈꿨던 최인훈은 벌어진 역사적 사실앞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운명이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하며, 풍문에 만족하지 않고 그 현장에 있으려한 명준은 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올해 여름, 짧은 광장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뜨거웠던 광장이 지나가고, 떠나간 그 자리, 그 광장에는 여전히 풍문만 구구한 것 같다. 그 풍문의 지층은 작가가 50여년 전에 말했던 것처럼 두텁고 무겁다. 어쩌면 두터운 퇴적이 이뤄진 것처럼 단단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4.19의 설레임, 80년 봄, 2002년 대선, 2008년 촛불까지. 그 빛나는 기억들. 새로운 기대감이 움트던 그때. 우리는 광장에 서있지 않았나. 그러나, 광장에는 풍문만 가득하고 여전히 우리는 자유를 살지 못하고 있다. 광장의 서문을 읽으며 도저히 떨치기 힘든 무력감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