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창고
네오소울 퀸, Erykah Badu
시린콧날
2008. 11. 7. 01:37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 해도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물론 한번 듣고서도 '꽂혀버리는' 노래가 있긴 하지만, 우릴때마다 짙은 맛을 내는 세작처럼, 진짜 참맛을 느끼려면 여러번 들어야 한다. 익숙해지니 좋다는게 아니라, 좋으니 익숙해지는 거랄까. 처음 듣고 귀에 솔깃하다가도 금방 질려버리는 음악이 있는가 하면 처음 들을때는 그저 그랬다가도 듣다가 어느 순간 확 다가오는 음악도 있다. 당연하게도 좋은 음악은 들으면 우려낸 진한 차처럼 깊은 맛을 주는 음악이다. 그런 음악은 시간을 함께 하는 법이다.
에리카 바두(Erykah Badu)의 음악은 전형적인 '우려먹으니 맛이 느껴진 편'에 속한다. 처음 알게된 건 회사 후배의 아이팟에서였다. 흔히 얘기하는 '애플빠'였던 그 친구는, 1세대 아이팟을 목숨처럼 애지중지하고 다녔다. 플래시메모리 형태의 mp3플레이어가 대세였던 그때, 하드디스크 타입의 아이팟에 엄청난 음악을 채워넣어 날 놀라게 했던 그때. 그 녀석의 아이팟 리스트에 생소한 이름이 보여 플레이 했던게 바로 에리카 바두의 센세이셔널한 데뷔앨범 Baduism이었다. (갑자기 뜬금없이 Rainism 생각이...비, 너란 놈은 대체 뭐냐)
에리카 바두의 음악이 한번 들으면 꽂힐 음악은 당연히 아니므로, 첨 듣고선 소개해준 그 녀석이 머쓱할 정도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었다. 들려준 곡이 당연히 On & On이었을텐데, 그냥 '목소리는 빌리 할러데이 같다. 꽤 들을만 하네'라고 아이팟 휠을 휘리릭 돌렸었다. 그리고선 한번 더 들어보라고 앨범을 줬었는데, 리핑해놓고 놔두었다. 그러다, 듣다듣다 물린다 싶어 다른것좀 들어보자고 에리카 바두의 앨범을 듣다가, 듣다가, 그래, 듣다가 그 짙은 맛을 느끼고야 말았다.
다른 네오소울 음악을 많이 들어본건 아니라 단순 비교는 힘들지만, 에리카 바두의 음악은 흑인음악, 소울음악임에도 끈적함이 덜하다. 이렇게 말하는게 소울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그닥 좋지 않게 들릴지 모르지만서도 그녀의 목소리는 담백하고, 청아한 맛이 있다. 흔히 느끼게 되는 소울 음악의 감정과잉, 꾸밈이 덜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부담이 없다. 지릿하게 찌르는 느낌이 아니라 톡톡 건드려주는 느낌이랄까. 계속 들으면 조금씩 배어나오는 음악이다.
리듬은 조용히 받쳐주고 살짝 어깨들썩일 흥겨움과 그루브를 준다. 잘개쪼개진 리듬이 목소리와 불협하지 않고 목소리를 밀어주고 당겨준다. 잘 어울린다는 말이 참 잘 어울린다. 게다가 노래를 잘 뜯어보면 디지털스러운데도, 전체적으로는 아날로그적인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전적으로 그녀 목소리의 다양한 변주, 탄탄함 탓임은 당연하다. 디지털은 끊임없이 아날로그를 지향한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음악에 있어서 아날로그가 느껴지지 않는 디지털은 그야말로 무의미하다.
들으면 깊은 맛을 주는 이 앨범, Baduism은 그렇게 끊임없이 내 곁에서 플레이되고 있는 중이다. 2000년 발매된 Mama's Gun도 있고, 2003년 EP World Wide Underground도 있다. 그리고 올해는 New Amerykah라는 더블앨범도 발매되었지만 (읽어볼만한 인터뷰), 아직까지는 이 멋진 데뷔앨범이 제일 큰 울림을 준다. 우울하지만, 슬프고싶진 않을때. 그럴때 들으면 더없이 좋은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