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창고
아, 살아있다 (20080929)
시린콧날
2008. 9. 30. 00:39
새벽에 형광등 밑에서 거울을 본다 수척하다 나는 놀란다
얼른 침대로 되돌아와 다시 눕는다
거울 속의 얼굴이 점점 더 커진다
두 배, 세 배, 방이 얼굴로 가득하다
나갈 길이 없다
일어날 수도 없고, 누워 있을 수도 없다
결사적으로 소리지른다 겨우 깨난다
아, 살아있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 中에서
퇴근길 만원버스. 앉을 수 없으니 그저 멍하니 서서 이런저런 생각하는 것 밖에 달리 할게 없는 시간. 수백번 봐 왔던 창밖 무심한 풍경을 본다. 내 눈 앞을 지나치는 종로의 어둡고, 밝고, 바쁘고, 차갑고, 스산한 길. 질리지 않는다는게 속상할 정도로 무감한 내 투명한 시선. 다 정리 못한 내일 할 일도 잠깐 떠올리고, 귓가를 타고 흐르는 노래가사를 곱씹어 보기도 하고, 생각나는 사람 떠올려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버스 유리창에 새겨져있는 내 모습을 본다. 흔들리지 않으려 버스 손잡이를 부여잡고 있는 나. 덜컹, 버스가 흔들리고, 만원 버스 촘촘히 서있는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내 몸도 슬쩍 기운다. 놓치지 않으려,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으려 손끝에 힘을 꽉주고 웅크린듯 손 내밀고 있는 내 모습.
아,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