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창고

비트겐슈타인 (20080923)

시린콧날 2008. 9. 23. 00:27

사랑은 사랑받는 대상이 부재 중일때 가장 강하며, 사랑은 실제로 분리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필요로 한다
레이 몽크 著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1 '천재의 의무' 132쪽

짧지만 치열했던 삶을 살았던 비트겐슈타인. 일천한 철학적 지식으로 감히 그의 책을 온전히 읽어낼 엄두가 나지 않아 일종의 해설서로 선택한 비트겐슈타인의 평전에서 발견한 글귀였다. 오토 바이닝거의 말이다. 반유태주의적이고 동성애혐오적이라 평가받는 그 사람 글 중에서 이 부분만 가슴에 남았던 기억이 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말을 가슴속에 품고 위대한 것(철학적 문제의 해결)을 이루기위해 그토록 힘든 천재의 길을 갔다고 한다. 

사랑받는 대상이 부재 중일때,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을 완성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필요조건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그 단절감을 견디는 것. 비단 남녀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이루려는 목표,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어떤 것도 그 범주에 포함할 수 있겠지. 가질 수 있을까. 없을까.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자 하는 것을 좀 멀리두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 그래서 이 천재는 단 두 권의 책을 남기고 20세기 가장 위대한 철학자가 될 수 있었을거다. 

요즘 예전에 스크랩해두었던 인상적인 글귀들을 들춰보는 일이 많아졌다. 이 글도 그 이유 탓이다. 비트겐슈타인의 평전을 읽고나서 불꽃같이 살다간 그 일생을 흠모했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말에는 격한 충격을 느끼기도 했다. 무모하게도 학교 도서관에서 '논리철학논고'를 빌려놓고 눈만 껌벅껌벅 하다 반납했던 창피한 경험이 떠오른다. 다시 짬을 내어 괜찮은 해설서 옆에 두고 다시 한줄한줄 읽어보고 싶다. 큰일이다. 잊어야 할게 많아서 그런지 읽으려 미뤄놓은(평생 미뤄질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읽고 싶어진다. 잡생각도 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