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선이 혹은 루시드 폴의 共鳴, 첫번째 이야기
최근에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을 꼽으라면 루시드 폴의 곡들이다. 최근작 '국경의 밤'은 시디를 사자마자 리핑된후 매일 밤낮을 나와 함께 하고 있다. 미선이, 루시드 폴, 그리고 조윤석으로 이어지는 감성의 한 축, 나와 공명하는 그 음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쯤 적어보고 싶었다. 미뤄두었던 숙제를 하듯이, 적어내려간다. 먼저 미선이의 음악에 관한 글, 그리고 루시드폴 1집부터 2집까지, 마지막으로 최근작 3집에 대한 얘기까지. 한 세편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1. 미선이
박준흠과 성문영이 만들던 '서브'라는 음악잡지에서였을 거다. 내가 '미선이'라는 이름의 그룹을 만난건. 그 당시 서브에서는 부록으로 몇몇 인디밴드들의 노래를 모아 시디를 주었는데, 거기에 꽤 괜찮은 노래들이 많이 있었다. (http://graymental.egloos.com/864900) 언니네이발관의 '보여줄순 없겠지'도 거기에 수록되어있었고, 미선이의 '치질'도 그중 하나였다.

미선이의 1.5집 Drifting
시디를 받고 리스트를 훑어보며 '미선이'를 재기발랄한 인디락밴드의 펑크곡이겠거니 지레 짐작했었다. 노래가 흐를때쯤 뚝뚝 떨어지는 감성에 "어랏?"하며 꽤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휴지를 찾을 수 없어 신문지로 닦다가 생겨버린 치질을 노래하는 가사. 적어놓고 보니 웃기지만, 이런 웃긴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심각하게 노래하는 곡의 묘한 매력이 날 잡아끌었다.
치질 - 미선이
매일 아침처럼 문 밖에
놓인 신문을 들고
무슨일이 있었나 살펴보려
변기에 앉았네
볼일이 끝날 무렵
다 떨어진 휴지걸이 위로
황당하게 비친 내 모습 불쌍하게 웃네
한장 찢어진 곱게 구겨
부드럽게 만들고
찝찝하긴 하지만 그런대로
대충 처리를 했네
며칠이 지나고
조금 아프긴 했지만 설마라도
낸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
휴지보다 못한 너희들 종이 사지 않겠어
아무리 급해도 닦지 않겠어 쓰지 않겠어
너희들의 거짓말 듣지 않겠어 믿지 않겠어
단돈 300원도 주지 않겠어 보지 않겠어
가사만 읽으면 이게 뭐냐? 싶겠지만, 노래로 들으면 가사는 잊혀질 만큼 매력적이다. 이런 말초적인 가사에 곡을 입힌 그들의 재기발랄. 그게 인디의 매력이 아닌가. 멜로디가 펑크였다면 그다지 인상에 남지 않았을거다. 꽤 서정적인 멜로디의 '언밸런스함'이 미선이의 첫 인상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미선이의 송시. 미선이 시절의 최고의 명곡이자, 미선이의 노래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이 곡으로 미선이는 언니네이발관 만큼의 존재감으로 나에게 왔다. (읽어볼 만한 Drifting 앨범리뷰 http://www.dogbeck.co.kr/soul-19.htm)
송시 - 미선이
이제 소리없이
시간의 바늘이 자꾸만 내허리를 베어와요
아프지 않다고 말하며
내 피부를 자르고
피 흐르고 살을 자르고
그렇게 지나갈 꺼래요
엄연한 자살행위
그래서 웃어 달라고 말씀하셨지만
아직 전자과의 몸으론 힘들어요
미안해요
마음속의 울림은 내 입속의 신음은
항상 그대에게 짐이었을 뿐
곳곳을 둘러 봐도
성한 곳 하나 없고
난 언제까지 썩어 갈건지
후반부에 이어지는 기타 연주, "난 언제까지 썩어 갈건지"라고 읊조리는 보컬. 떠나가려는 자, 어쩔수 없이 떠나야 하는 자의 고독과 아픔이 그려진 노래. 전과자라는 언급에서 일견 사회성을 읽을 수도 있겠다. "시간의 바늘이 자꾸만 내 허리를 베어"온다는 가사는 시적이다. 흐르는 시간이 폐부를 베어올 정도로 아프고 고통스럽다는 표현. 시한부의 삶일지도 모를 절망감. 이 한자락으로 이후 루시드 폴의 가사의 유려함을 짐작해볼 수도 있다. 물론 가사는 많이 착해졌지만. 이 곡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건 가사와 기타연주이다.
그 이후 미선이는 잊혀졌다. 가끔 서브에서 나눠준 시디를 만지작 거리면서 미선이는 무얼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 수많은 인디밴드들 처럼 여러가지 문제로 밴드활동을 접었겠거니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버스, 정류장' 영화관련 기사를 보다가 미선이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루시드 폴이라는 이름으로 영화음악을 담당했던 조윤석이 미선이의 맴버였다는걸 알고서 무척 반가웠다. 오래동안 못본 친구를 다시만난 반가움.
솔로가 된 그의 음악은 미선이의 시절에서 촉촉한 감성과 외로운 가사만을 추려낸 느낌으로 다가왔다. 고독의 깊이는 깊어졌고, 사색의 결과물은 더 고요해졌다. 주변에 대한 세심한 관심, 먼곳에서 혼자 떨어져 살아가는 자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노래에 명징하게 맺혀있다. 최근작 '국경의 밤'은 그가 지내온 공간과 시간에 대한 고백이자 기록이다. 당연하겠지만 그 시작점은 '미선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