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지막 라디오, 정은임을 추억하다
정은임 아나운서가 2004년 사고로 생을 마감한지 벌써 3년이 넘어간다. 갑자기 다시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떠올린건 얼마전 피시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그녀 방송파일 때문이었다. 점심먹고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그녀 죽음을 전해들었을때 느꼈던 심한 상실감이 기억난다. 더이상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상실감. 한동안 잊고 있었던 정영음과의 기억, 그 좋았던 추억 때문이었을게다.

공부가 일이었던, 고등학교때 토요일마다 밤을 세워 숨죽이며 라디오를 들었었다.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라디오. 많은 음악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던 그때의 라디오를 난 참 사랑했었다. 그중에서도 정영음의 토요일 방송은 빼놓지 않고 들었다. 토요일 새벽 '내인생의 영화'라는 청취자들 각자의 인생이야기와 어우러진 다섯편의 영화를 소개해주는 코너 때문이었다. 극장가서 영화볼 여유가 없었고, 지금처럼 손쉽게 다운받아 영화를 볼 환경이 안되는 그런 상황에서 어쩌면 난 정영음을 통해 영화를 봤고, 읽었던것 같다. 지금 보면 꽤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커다란 라디오 앞에서 들었던 정영음. 가끔 그녀 방송 클립을 들을때마다 그 과거의 추억때문에 그녀 죽음이 못내 야속하다.
1995년 3월 31일 (4월 1일 새벽) 마지막 방송이 기억난다. 들을때마다 울컥한다. 흐느끼며 멘트를 이어가던 익숙한 그 목소리. 구광본 시인의 시로 시작한 마지막 방송의 오프닝.
꽃 피는 날 그대와 만났습니다.
꽃 지는 날 그대와 헤어졌고요.
그 만남이 첫 만남이 아닙니다.
그 이별이 첫 이별이 아니고요.
마당 한 모퉁이에 꽃씨를 뿌립니다.
꽃 피는 날에서 꽃 지는 날까지
마음은 머리 풀어 헤치고 떠다닐 테지요.
그대만이 떠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꽃 지는 날만이 괴로운 것이 아니고요.
그대의 뒷모습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나날이 새로 잎 피는 길을 갑니다.
1995년 4월 1일 마지막 방송 오프닝 멘트
배유정이 영화음악을 진행하면서부터 몇개월 듣다가,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라디오와는 점점 멀어졌고, 정은임도 그렇게 잊혀졌다. 나 자신 그녀가 새로 영화음악을 시작했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고, 당연히 그녀의 두번째 마지막 방송도 듣지 못했다. 이미 내 주변엔 인터넷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새로 시작한 회사생활도 늦은밤 라디오를 즐기게 하지 못했다. 내 주변의 상황이 그러했지만, 2003년에 영화음악에 다시 복귀한 그녀에게 주어진 극악의 방송시간(새벽 3~4시)은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더이상 그녀의 라디오는 대중 프로그램이 아니라 소수만 깨어있는 시간에 어울리는 마이너 프로그램이 되었다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95년 마지막 방송때, 라디오를 진행하게 되어, 또 정영음같은 좋은 프로그램과 연애하듯 방송해서 행복했다며 소회를 털어놓은 그녀에게 다시 돌아온 시절은 냉혹하고 좌절스러운 것이었으리라. 그래서 두번째 영화음악 폐지된 후 그녀는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겨두었다. 뒷맛이 씁쓸하고 글을 읽으며 공감하게 되는 내 현실이 무겁게 나를 누른다.
프로그램이 끝나서 맘이 아픈 것은
제가 떠나서 아픈 것이 아닙니다.
갈수록 자리가 좁아지는 '진심'에 대해,
문화의 다양성에 대해,
추억을 잃어버리는 수많은 보통사람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용천역 폭발이나 사람이 죽어가는 이라크의 하루하루를 생각해보면,
아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생사의 고비에서 신음하고 있을 사람들,
먹고 사는 것 자체가 문제인 사람들을 생각하면,
방송 프로그램 하나 있고 없고가 뭐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언제쯤이면, 식탁 앞에 앉아 미안한 마음이 없어질까요.
저 혼자 잘살고 저 혼자 잘 먹는 것 같아 항상 미안합니다.
요즈음, 세상과 사람(저를 포함해)에 대해서 생각이 많았던 참이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유령처럼
무지막지하게 무엇이건 먹어치우는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해,
'회사'에 있는 사람으로서 요즈음에는,
내가 회사를 바꿀수나 있는 것일까,
내가 회사 안에 먹혀들어가는 것일까,
다르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
다르게 산다는 것이 가능키나 한 일일까..
아니, 돈의 논리가 좌우하는 세상에 대한 근심을 떠나,
과연 사람이란 존재가 다른 사람과 평화롭게 조화롭게 살 수나 있는 것일까,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
등등 새삼스레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살면서 무엇이든 너무 깊이 파고들면 안될것 같아요.
사람이니 세상이니 그 속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그러면 참 살기 싫어지더라구요.
그래서 꽃 피면 꽃 이쁘다, 꽃 지면 또 피겠지..
날 좋은면 어디 구경갈까... 하면서 사는게 정신 건강에 좋을 듯 합니다.
어차피 이 세상에 나왔는데, 살 힘을 잃으면 아니 되잖아요?
그녀를 투사로 기억하는 이들이 있나보다. 하긴 나도 MBC노조투쟁때 손석희, 백지연과 함께 앞장서던 그녀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아마 방송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켄 로치 영화를 소개하며 틀던 인터내셔널가의 이미지가 각인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보다 정은임은 답답한 고3생활에 라디오를 세상과 소통하는 길이라 믿으며 지내던 나에게 작은 샘이었고, 위로의 목소리였을 뿐이다.
그녀 인생의 영화이자, 그녀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하며 봤다는 (그리고 또한 내 인생의 영화이기도 한)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 그녀 삶은 허공으로 질주하듯 사라져 버렸지만, 난 이렇게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기억하며 듣고 있다. 들으며, 들을때마다 그때 품었던 꿈과 지금의 삶을 돌아본다. 그녀를 추억하며 1995년 정영음의 마지막 방송의 클로징 멘트를 올려본다. 그곳에서 그녀의 방송을 들으며 행복했던 사람들로 인해 웃을 수 있길...
이제 마지막 인사를 정말 드려야겠네요. 이 FM 영화음악은 제가 mbc 아나운서로 입사해서 처음으로 맡은 프로그램이었는데요. 그러니까 정식으로, 그 전에 TV를 임시로 맡은 것도 있었지만 정식으로 맡은 것은 라디오 프로그램 FM 영화음악이 처음이었어요. 그 때가 1992년 11월 2일이었는데 덜덜 떨면서 첫 방송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뭔가 특별한 날, 아침 햇살이 남다르게 느껴질 때라든지, 아주 예쁜 꽃을 봤을 때, 낮에 길거리에서 특별한 광경을 봤을 때, 책에서 멋진 글을 발견했을 때, 그럴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바로 이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엔 꼭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굉장히 가슴 두근거리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고 또 어떨 때는 마이크 앞에서 막 숨막힐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었었어요 그래서 문득 이거 꼭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과.........
방송하는 사람의 가장 큰 행복이 바로 이것 같습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 2년 반 동안 참 많은 분들을 만났구요. 소중한 인연을 맺은 것 같습니다.......
저 정은임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우리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중에서 김창완씨의 노래, '마지막 인사'로 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1995년 4월 1일 마지막 방송 클로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