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창고

중동의 테러를 보는 다른 시각

시린콧날 2007. 9. 17. 18:01
박노자의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P211를 읽다가 스크랩한 글귀.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무자비하게 침략한 1982년에 나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의료봉사를 했다. 그때 환자 중에 '타리크'라는 레바논 소년이 있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그 아이의 부모와 가족, 친척과 친구들을 섬멸해 버렸다. 타리크는 이 세상에 혼자 남았다. 수술을 여러 번 거듭한 끝에 그를 어느 정도 치료했지만 끝내 오른손은 못 쓰게 됐다. 그런데 그 애는 말도 안 하고 음식도 안 먹었다. 완전히 절망한 것이다. 어느날 나는 그에게 의욕을 주기 위해 '왼손으로 총을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그야말로 다시 살아났다. 나는 그때 그 아이가 싸움에 몰두하다 죽으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아이에게 '싸우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 싸우는 것이 불가능했다면, 그 아이는 죽고 말았을 것이다."

"부유한 쪽에서 사는 우리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큰 폭격기를 타고 제3세계에서 '또 하나의 작은 목표'를 파괴하려는 조종사의 눈으로 이 세계를 보고 있다. '새로운 십자군'을 들먹이는 부시의 망언들을 당연한 것처럼 듣는 우리는 그 거대한 '십자군'에 희생당할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 2001년 9월30일자 노르웨이 <다그블라데트>가 표지 기사로 보도한 트럼소 지역의 국립병원 외과의사 후숨의 발언.



출처를 찾을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은 이스라엘 탱크이고, 돌팔매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것이다. 힘의 불균형, 누가 가해자인가.


나는 과연 총을 들고 있는 중동의 어린 손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나의 시선은 정말 '나의' 시선인가. 지금의 불평등한 역학관계에서 "어찌됐든 테러는 정당화 될 수 없다"는 말이 과연 옳은가. 총을 들고, 목숨을 위협하는 그들의 모습뒤에 감춰진 '어쩔 수 없음'을 우리는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가.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