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광주, 살아남은 자의 슬픔
오늘 아침 우연히 5.18 27주년 백일장 대상작을 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 썼다는 그 작품은 글만봐서는 작가의 나이를 짐작키 어려웠다. 구글검색을 해보니 여러 글들이 나왔는데, 그중 찾은 오마이뉴스의 기사에는 다소 호들갑스런 찬사가 덧붙여져 있었다. 그 찬사에 모두 동의할 수 없다고 해도, 이 시가 가진 극적인 긴장감, 묘사, 표현력은 소름이 돋을 만큼 힘이 있었다. 원문을 옮겨본다.
정민경 (경기여고 3학년)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그때 나가 떤건지 나 옷자락 붙든 고놈이 떤건지 암튼 겁나 떨려불데.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쟤.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이 여고3학년의 내면에 어떤 기억과 경험이 내재되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가 글과 영상으로 기록된 5월 광주에 대한 간접체험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 친구의 시재(詩才)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어쩌면 무섭기까지 하다. 시는 독자에게 '내가 5월 광주에서 아프게 겪었던 기억'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군대의 총부리가 무서워, 교복입은 아이의 도움을 외면해야만 했던 (그럴수 밖에 없었던) 그 시대의 슬픔이 뚝뚝 떨어져 내릴것 같다. 어쩌면 혁명전사로 도청에서 삶을 마감한 이들만큼이나 그때의 그 기억은 모두에게 상처였다.
5.18기념식에 참석한 대한민국 고위관료 분들을 보면서 '그래도 세상참...'이란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그것도 잠시뿐, 5월 / 광주/ 이젠 피끓는 느낌없이 이유없이 서럽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수 있다. 그런 나에게 어린 소녀가 전해주는 시하나가 가슴을 적신다. 대학시절 배낭여행 다니며 광주 금남로의 전남도청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웠던, 아무렇지 않게 그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조금은 야속했던 그때 내 기억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오늘, 잠시,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다시 읽어본다. 스스로를 미워하지만 한없이 강했던 5월광주를 살아낸 사람들을 위해...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ICH, DER UBERLEBENDE
Bertolt Brecht
Ich, weiß natuerlich : einzig durch Glueck.
Habe ich so viele Freunde uberlebt.
Aber heute nacht im Traum. Hoerte ich diese Freunde von mir sagen :
"Die Staerkeren uberleben."
Und ich haßte mich.